나폴레옹 위인전 읽기 (feat. 초등학생 권장도서)
나폴레옹 위인전 읽기 (feat. 초등학생 권장도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5명을 뽑으라면 반드시 포함되는 인물이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프랑스혁명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 상황 속에서 황제 자리에까지 오른 그는 유럽 전역을 정복하며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하지만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면서 영국에 항복했고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영웅이면서 동시에 독재자였던 그는 어떻게 그런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까? 그리고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나폴레옹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가?
어린 시절부터 총명했으며 군사학, 철학, 수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심지어 그림 솜씨마저도 뛰어나 화가로서도 인정받았다. 뿐만 아니라 탁월한 리더십과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 덕분에 주변인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이러한 능력들은 훗날 전쟁에서 빛을 발했는데 불리한 상황에서도 승리를 거두거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물론 운도 따랐겠지만 분명 남다른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토록 눈부신 성과를 거둘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그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세계사에 길이 남을 위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어렸을때부터 똑똑했나?
우선 그는 타고난 천재였다. 어린 시절부터 독서광이었으며 다양한 분야에 재능을 보였다. 심지어 수학마저도 잘했다. 덕분에 1789년 프랑스혁명 직후 치러진 국민의회 의원 선거에서 당당히 당선되었다. 이때 나이가 불과 16세였다고 하니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군사·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승승장구했다. 마침내 1800년엔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으로서 오스트리아 군을 격파하였고 이듬해엔 이집트 원정길에 올라 로제타석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렇게 전쟁에서의 승리를 거듭하자 주변 국가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급기야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교황 비오 7세의 결정은?
그러자 교황 비오 7세는 무력 진압을 지시했고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로 돌아왔다. 이것이 바로 제1차 대프랑스 동맹전쟁이다. 물론 초반에는 기세 등등했으나 곧이어 벌어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대패하여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체결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힘을 과시하던 그는 드디어 1804년 12월 2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거행하며 명실상부한 황제로서 군림하게 되었다. 이어 대륙 봉쇄령을 선포했는데 이로 인해 러시아 제국 및 프로이센 왕국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어쨌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절대왕정 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으며 나아가 서유럽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품었다. 그리하여 1805년 6월 22일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을 격퇴시켰다. 이제 남은 건 영국 뿐이었다. 때마침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이 패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절호의 기회였다. 곧바로 침공을 감행하였으나 웰링턴 공작이 이끄는 영국군에게 완패당하고 말았다. 결국 퇴각 명령을 내렸고 그해 11월 19일 엘바 섬에 유배되었다. 이곳에서 1년 동안 머물다가 이듬해 탈출하였으며 또다시 재기를 노렸으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